유용함(쓸 모 있음)과 필요함의 차이

현재는 과거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줄 수 있는가? 아니면 과거에 어떤 삶 속에 어떤 존재로 살아왔는지를 보여 주는가? 현재의 모습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다는 그가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삶과 그 삶 속에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관심을 가지라 말하고 싶다. 일록의 과거는 현재의 모습만으로 볼 때 쓸 모 없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곧 있으면 40이 되어가는 대용처럼 그 연배에 있는 일록 자신도 쓸 모 없는 사람임에 대한 자기 체면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는 돈에 대한 욕심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삶 속에 스스로를 놓아 버렸다. 매형의 쓸 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은 그런 일록 자신을 너무나 날카롭게 베어내는 말이다. 그러기에 일록은 쓸 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매형의 판단에 대항하기보다는 그 판단으로부터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매형 아니 이 사회의 평가로부터 도망쳤던 일록은 어쩌면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도망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망치고 숨어버려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때려도 눈물이 나지 않을 만큼 감정마저도 저 깊은 곳에 숨겨버린 일록이 고등교육도 제대로 받았을지 의심스럽고, 소년원과 연관되어있는 대용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점차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언제 있었을지 모를 현실과의 맞짱이라는 상황에 그 스스로를 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 싸움에 이제 혼자가 아닌 꿈이 있는 삶의 동반자들과 함께 맞서려고 서있다. 마치 여호수아가 이집트의 강력한 군사와 제리코의 철벽 앞에서 그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상대를 향해 신이 주신 소명 하나를 가슴에 새기고 나팔을 부는 것처럼 말이다. 일록이 부르는 제리코의 싸움은 무기력, 회피, 비관을 불러드린 그의 과거와 알 수 없는 그의 미래를 향한 나팔소리일지 모른다. 아무리 때려도 나지 않던 그의 눈에서 이제는 눈물이 나고, 그 눈물은 그치지 않는다. 비로소 일록은 자신의 감정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매형의 인생이나 누나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팔을 들 듯 야구방망이를 잡는다. 세차게 날아오는 자신의 인생과의 싸움에서 방망이를 휘두른다. 이것이 일록의 현재이다.
영화에는 거울 속 장면이 크게 세 번 나온다. 첫 번째 장면은 누나와의 통화 후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때리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 일록의 과거가 응축된 모습이다. 예건이 기억하는 것처럼 지금보다 젊었을 일록의 삶은 음악을 하고 싶어 방황했다. 그런 일록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능성이 떨어지는 삶을 사는 이로 평가받고, 버림받았을 것이다. 또한 누나가 언제부터 날 챙겼냐고 소리치는 그의 말에서 누나나 가족이 그에게 생계를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지원을 해주지 않았음에 대한 원망도 그의 맘속에는 자기 방어를 위한 이유로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젊은 시절 일록은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고,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희망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학습되었는지 모른다. 예건이 영어선생을 하고 오피스텔을 받는 등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일록은 예건이 그렇게 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을 비아냥거리며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일록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두 번째 장면은 대회가 무산되고 거울을 보며 눈물 흘리는 일록이다. 이것은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거울 속에 비친 일록 자신의 자기반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일록은 4중 창단이 결성되고 나서도 자신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 일록은 항상 예건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노래는 정했는지, 모든 책임을 미룬다. 무기력한 삶 속에서 일록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것이다. 대용이 스스로를 재수 없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일록은 그런 말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겁쟁이로 만들어버린 과거의 실패는 그에게 무기력을 학습하게 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대회가 무산되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대회에 모든 것을 건 대용이나 다른 멤버들에 대한 책임감 없는 자신의 모습과 자기 자신의 삶에 아무런 책임감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왔던 자기반성의 눈물일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거울 속 장면은 수염을 깎는 일록과 꽁지머리를 자르는 대용의 모습이다. 이 장면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제거한다는 동일성이 있지만, 일록은 가꾸지 않고, 무성하게 제멋대로 자란 수염, 즉 내버려 둔 자신의 과거를 무딘 면도칼로 어렵사리 깎아 내고 있고, 대용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지지대였던 김병지의 꽁지머리, 즉 과거의 희망을 버리고, 이제 음악인으로서의 무대를 꿈꾸며 새로운 희망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록에게 아직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과거의 자신을 인지하고 그 과거와 같은 삶은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일록의 미래는 그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기 전 보여줬던 거울 속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있는 것처럼 맑고 파란 미래가 될 수도, 또는 뜬구름을 향해 헛발질을 하는 삶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미래가 그가 뜬 구름을 잡던 아님 파랗게 화창하던지 간에, 그의 미래는 타인으로부터 쓸 모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기에 돈이 없고, 명예가 없더라도 그의 삶에는 살아갈 가치가 생긴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여 년을 방황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제리코의 싸움에서 이집트인들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관, 두려움, 비난을 이기고 가나안 땅에 발을 디뎠듯이 일록도 지금까지의 방황을 뒤로하고 자신의 과거와 싸워 이겨 찾은 자신의 삶이기에 앞으로의 실패와 역경은 그의 미래를 규정하지 못한다. 가치가 있다는 것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 살아갈 존재의 이유를 말한다. 내가 내 삶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 말이다. 일록의 미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