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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Doubt, 의심을 잉태하게 하는 자기신념

doubt 의심

 

의심을 잉태하게 하는 자기 신념

 

‘Doubt’를 처음 봤을 때에는 저런 일들이 너무 많은 것에 공감했고, 두 번 봤을 때는 그럼 “왜” 우리는 의심하게 될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진실을 증명하려 애쓸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세 번 봤을 때는 사실과 진실,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싫은 것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영화에서는 의심이 깃드는 많은 순간이 포착된다. 그리고 가장 편협된 자기 가치로 의심을 진실로 증명하려는 알로이 수녀, 그런 수녀를 상대로 어려움에 처한 학생에 대한 사랑이었음 증명하려 하는 플린 신부, 그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제임스 수녀, 모두에게 의심은 시시때때로 불어온다. 누가 열어놓았는지 모르는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의심이 생기는 짧은 순간과 그것이 다소 명백하지 않음을 알지만,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더하여 그 의심의 순간 즉, 작은 조각 사실만으로 물러날 수 없는 진실임을 증명하려고 자신의 인생을 바친 신념조차도 버려가며 사투하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지켜보았다. 교장실에서 저 멀리 윌리엄이 신부의 손을 뿌리치는 조각에 지나지 않는 사실 하나로 알로이 수녀는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교회 밖을 나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플린 신부에게 절규한다.  

 

우리는 때때로 단편적인 사실이 진실인양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이 곧 진실일 수는 없다. 알로이 수녀가 본 윌리엄과의 광경이 사실일 수는 있겠으나, 그 장면 하나로 플린 신부가 동성애적 의심을 받을만하지는 않았는데 결국 수녀는 자신의 경험과 신념에 그 사실을 덧씌워 진실화 해버린다.

 

결국 이런 오류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관계의 오류들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가치 즉,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싫어하는 것이 그른 것임을 증명하려는 “자기 신념”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곧 의심은 자기 신념에 위배되는 타인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인 셈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실이 나타나면 그 사실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그릇된 것임을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임을 증명하게 된다. 자기 신념에 맞지 않는 신부 그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던 알로이 수녀는 손톱이 긴 사람은 게으른 사람, 설탕을 먹는 사람은 욕망을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 즉 동성애적 욕망도 누르지 못하는 자기 신념과는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는 더없이 좋은 사실들이 되어버린다. 알로이는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버렸다. 그러나 알로이는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본질 자기 신념은 버리지 못했기에 의심이라는 자식을 잉태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를 이루는 알로이 수녀와 플린 신부의 대립 즉 서로의 좋고 싫음이 단순히 알로이 수녀가 보수적이고 신부가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다. 사실 이들 모두는 얼핏 보기에 각자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있다. 손톱, 볼펜, 설탕을 싫어하는 보수적 이미지의 알로이 수녀, 진보를 지향하는 플린 신부, 그러나 이들은 다시 뒤집어 보면, 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 이면에 또 다른 자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알로이 수녀는 1960년대 가톨릭 조직 내에서 수녀라는 신분으로 신부에게 맞짱 뜬 급진적 진보주의자이며, 플린 신부는 가톨릭적 사고로 엄격한 생활방식을 주장하는 알로이 수녀를 굶주린 동물로 비유하는가 하면, 신부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이용하여 알로이 수녀와의 갈등관계를 알로이 수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해결되는 문제인양 대립관계를 더욱 키워나간다. 플린 신부의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득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비뚤어진 영화의 프레임, 그때마다 드러나는 그들 사이의 비뚤어진 관계를 보여주며 영화는 관계의 오류, 사건, 사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변하지 않는 진실 그 자체를 밝히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기 신념이 곧 진실임을 밝히려 하기에 비뚤어진다. 플린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 누구도 변하지 않는 진실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함께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영화는 처음부터 관계의 오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플린 신부의 첫 말씀 중에 ‘Doubt'은 모두의 결속력을 높이며,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이야기한다. 쌍방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알로이 수녀보다는 가톨릭 사회에서 좀 더 보장받은 지위에 있는 플린 신부가 남편을 잃고 수녀라는 절제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알로이를 이해하고 그녀의 의심을 그녀의 관점에서 이해시키려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