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반 고흐가 필요한 시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미술작품 특히나 전시회에 걸려있는 그림을 볼 기회가 생길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거야?’ 그리고, ‘이 그림이 길거리 삼류 화가가 그린 그림과 어떤 점이 특별하기에 거대 마케팅의 대상이 되어 현대인들에게 다가와 있는 거야?’라는 다소 저렴하고 무식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나 반 고흐의 몇몇 그림들은 미술적 지식이나 안목과는 전혀 무관하게 노란색 그림이어서 좋아한다. 집을 환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를 포함해서 말이다. 사실 시간적으로나 지적으로 충분한 자원이 없어서 선택하게 된 ‘반 고흐 미디어 아트전’은 앞으로의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생길 수 있는 내게 몇 가지 정보를 주었고, 반면 미디어 아트라는 장르에 대한 개인적인 선입견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반 고흐 미디어 아트전’은 쉽게 설명하면 하얀 벽면과 높은 퀄리티의 빔프로젝터라는 하드웨어에 반 고흐의 그림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상당히 입체적이고 동적인 형태로 高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이다. 거기에 좀 더 감성을 자극하기 위하여 음악, 조명 등 흔히 공연예술에서 쓰이는 다양한 인프라들이 총동원되었다. 그리고 극예술의 막이나 장처럼 8개의 zone으로 나누어 각각의 zone이 다른 주제를 가지지만 동시에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 아트전이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예상대로 단체 유치원생, 연인, 친구 또는 나처럼 직장인 등 다양한 계층이 관람하고 있었고, 모두들 사진 촬영 허용이라는 안내문구 앞에 BGM이 방해받을 정도로 핸드폰 사진을 찍어댔다. 나도 세 번째 zone에서는 동영상을 찍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미디어아트의 입체성과 동적임으로 내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거대한 느낌과 반 고흐의 환상적인 색채와 감성적 대자연의 표현은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특히 붓 터치를 ‘한 땀 한 땀’ 살려내고, 하늘에 떠있는 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움직임 등은 반 고흐가 왜 이렇게 붓을 터치하고, 왜 이런 기법을 사용했는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 심지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미디어 아트 전시회는 입체적이고 동적인 표현으로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하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보다 대중들 가까이 가져다 놓는 등 많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날로 발전하는 최첨단 기술에 힘입어 앞으로 더욱 발전해 갈 영역임에도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미디어 아트 전시회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던 나에게 전시회를 바라보는 자세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예를 들면 작품 하나를 보기에 앞서 작가의 시대를 알고, 작가의 화풍 등 미술사에 대한 아주 약간의 지식을 충전하고, 유명한 몇 가지 작품들은 그 작품의 에피소드를 알아간다면 좀 더 재미있는 전시회 관람이 될 수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 아트전을 통해 미술에 대한 관심이 유발되는 계기도 되었으며, 더불어 좋은 소극장에서 아주 감성적인 짧은 영상을 본 듯한 느낌도 안겨주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특히 열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은 더욱 좋아한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TV를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역기능이 싫어서 집에서 아예 없애버린 물건 중에 하나다. TV를 없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그냥 보고 듣기만 하면 되는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내 생각이 없어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반 고흐 미디어아트전’에서 나는 굉장히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입체적이고 동적이며 아름답고 감각적인 표현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기획자가 그어놓은 8개의 방 안에서 동적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 위한 감각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자칫 생각이란 걸 하려면 많은 장애물이 생긴다. 오감이 메여있기에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없고, 눈과 귀가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냥 강렬한 영상물이 머릿속에 복제되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성찰의 시간은 찰나도 길다고 느껴질 듯했다. 물론 이 미디어 아트전 기획자의 생각을 한 명의 성찰적 관점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나의 성찰을 더하여 보는 계기로 삼으면 되겠지만, 이런 일방적 소통방식의 전시회에서 관람자인 나 스스로 성찰을 하기에는 내 감각들이 너무 예민해서 아트전 내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빈 공간이 없이 꽉 찬 인테리어 전시관을 본 느낌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지하철 안에서 책을 꺼낼 때 비로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를 관람하는 동안 나는 반 고흐의 작품이 아닌 미디어 아트전 기획자의 생각을 관람했다는 씁쓸함이 들었다. 반 고흐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 작품은 바로 ‘이것’이다 라는 주제를 명쾌하게 달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문화나 예술은 그 동시대 사람들의 삶이 반영된다. 그리고 그 문화와 예술은 다시 그들의 삶을 이끈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문화나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점을 바꾸어보고 다양한 시각과 스스로 또는 타인과 함께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번 미디어 아트전에 별 5개 중 2개를 주었다. 한 개는 ‘미술, 별거 아니네?’라는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이고, 나머지 한 개는 3번째 zone에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든 ‘놀라운 기획력’ 때문에 주었다. 그러나 그 놀아운 기획력은 초중고 어쩌면 대학에까지 퍼져있는 주입식 교육과 대중매체나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단일화된 사고를 고착화시키는 또 다른 수단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미디어아트전의 반 고흐가 마치 정답인 것처럼 강요당하고 있고, 다른 반 고흐 전시회를 관람하게 될 때 미디어아트전의 반 고흐의 잔상이 떠오를 것 같은 기우도 함께 생겼다. 다양성이 강조되고 차이의 인정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다. 그래서 미디어아트가 또 다른 TV가 아닌 하나의 아트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관람자를 좀 더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드는 과정의 보완이 필요하다. 박진영의 반 고흐, 홍길동의 반 고흐, 옆집순이의 반 고흐는 다시 그 다양성을 바탕으로 이 시대를 표현하고 다시 이 시대를 이끄는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미디어아트의 반 고흐처럼 말이다.
관람 전 전시회 측으로부터 일부 관람관의 장치 고장으로 한 번 더 올 수 있는 초대권을 받았다. 받아 드는 순간 아이들을 데려와야겠다고 계획했지만, 관람을 마친 후에는 회사 동료에게 줘버렸다. 내 아이들은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반 고흐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미약하더라도 아이들만의 반 고흐가 가슴속에 새겨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은 빈 공간이 있는 전시 속여 놓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