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시대를 말하는가?
-은폐된 시대와 배경이 주는 의미-

1. 서론
설국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에게서 '은폐된 시대와 배경', '시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동양적 미'라는 평가는 빠지지 않고 들춰진다. 특히, 은폐된 시대와 배경에 대해서는 설국이 설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설국다운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말 설국은 ‘시대’와 ‘배경’을 은폐시킨 것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곳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지명을 넣은 소설이 하나의 군(群)을 이루는 글들과는 달리 '지명은 작자 및 독자의 자유를 묶어버리는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 등 몇 가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이유들로 지명을 밝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에 대하여 '타국에서 읽으면 회황의 기분이 들게 될 것이다'라고 반복적으로 기술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명, 전쟁 중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 위해 그만의 영리한 방법으로 '시대'와 '배경'을 감춰 뒀을 것이라는 출발에서 이 글을 쓰려한다. 그리고 그러한 출발과 함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분명한 목적에 의해 소설 '설국'을 그 긴 시간 동안 쓰고, 수정했을 것이다. 그 목적은 자신의 조국 ‘일본’에 대한 애정과 그 속에 흐르는 일본의 문화예술, 여성상 등을 통해 일본 전통미를 드러내는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보았을 때 글에 대한 검열과 문학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었던 시기로 작가 스스로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피해 갈 최적의 방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2. 본론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이 패전한 이후 일본 전통에 대한 아름다움에 특히 초점을 맞춘 작가라는 평을 많이 받아왔다. 그러나 가와바타는 전쟁 중에도 일본 전통미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그것은 설국 곳곳에 나타난다.
1) 설국에서 은폐된 시대와 배경이 주는 의미
설국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유자와라는 온천에 머무르며 그곳을 배경 삼아 쓴 소설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여행을 하며 여행지를 배경으로 지명을 드러내면서 쓴 소설이 꽤 많다. '아사쿠사 쿠레나이당'처럼 말이다. 그러나 설국은 원래의 지명을 철저히 은폐하고 단지 눈, 삼나무 숲, 온천, 고치 그리고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긴 터널을 지나 오랜 시간을 가면 만날 수 있고, 눈이 쌓이면 몇 개월 동안 차량의 출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진 곳이다. 이로써 소설의 배경을 '설국'이라는 비현실적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가가 이 소설을 첫 연재한 때는 1935년이다. 일본이 한참 제국주의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소설 어디에도 전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처럼 설국은 표면적으로 지명과 정확한 날짜나 연도를 배제시키면서 무언가 감추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들을 감춤으로써 더 강하게 그리고 더 짙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전쟁과 지명이 아니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대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본’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2) 등장인물과 '여성상'에서 보여주는 시대와 배경의 의미
설국의 주요 등장인물인 고마코는 누군가의 요양비를 책임지기 위해 게이샤가 된 시골 출신의 여성이다. 시마무라를 통해 비친 그녀는 헛수고인 여러 가지 일들을 그녀 자신의 삶을 지탱해가는 수단으로써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삶과 너무나 흡사하게 헛수고인 사랑을 열정적으로 시마무라에게 보낸다. 설국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여성은 요코라는 소녀이다. 요코는 고마코와는 사뭇 다르게 도시의 병원에서 간호하는 일을 하다 고마코가 요양비를 책임지고 있는 그 남자 유키오를 사랑하게 되어 그가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하고 그를 떠나보내고서도 그를 매일매일 조문한다. 그러나 결국 요코는 소설의 마지막 한 페이지를 남겨두고 고치 창고의 화재현장에서 아이들을 구하고 그녀는 불속에서 죽는 것으로 연상된다. 가와바타는 왜 이런 여성을 등장시켰을까? 이 또한 시대상황과 맞물린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이 쓰이고 발표될 즈음부터 패전 이후까지 일본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이 시기 일본에서 여성이 팔려가거나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기 위해 게이샤가 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당연한 슬픔인 것이다. 또한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부터 시작된 태평양 전쟁 등 끝없는 전쟁을 치르던 때이다. 이런 시기에 헛수고인 한 남자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여성상과 죽음 이후까지도 함께해 주는 지고지순한 여성상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선 사람이던, 전쟁터에서 죽음을 직면하고 있던 사람이던, 타국에 있는 모든 청년들에게는 고국을 그리워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로 나가 폐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유키오는 타국으로 나가 있는 젊은 일본의 청년들을 대표하고 있을 것이며, 소설 속 화자로 나오는 시마무라는 검열 아래 작가로서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 수 없던 가와바타 자신이거나, 시대의 문학이었을 수도 있고,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서양무용을 평하듯 끝없는 욕망 속 허상(虛像)인 서양을 가지기 위해 전쟁을 펴고 있는 일본 그 자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 환경과 생활에서 보여주는 시대와 배경의 의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소설 설국만큼이나 유명한 설국의 첫 문장들이다. 설국을 이야기하는 많은 글에서 이 문장들은 간결함과 상징적 표현현 대표적인 예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글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마치 독자가 정말로 터널을 빠져나와 새하얀 눈으로 덮인 고장에 도착했을 법한 사실적인 묘사와 동시에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한 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첫 문장을 처음 읽었던 내게 던져진 이미지는 만주를 집어삼키고, 러시아를 삼킨 제국화 된 일본이 그들의 가장 대표적인 이동 수단 ‘기차’를 타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모습이었다. 조국 일본이 전쟁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길 원하는 일본인 가와바타로서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훌쩍 건너뛰어 보면 지지미와 고치는 설국의 마지막 편에 등장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설국의 여성들에게 눈 속에 갇혀 지루하고 힘든 삶을 안겨주는 지지미, 요코가 죽은 곳 고치 창고는 왠지 모르게 쓸쓸한 공통점이 있다. 설국에 사는 여성들의 삶을 통제하는 지지미와 실이 뽑힌 후 생을 마감하는 고치처럼 지고지순한 여성상을 대표하는 요코의 삶을 죽음으로 통제해 버린다. 이때 일본 시골 민들의 삶은 너무나 팍팍했다. 땅과 소작 물은 거의 대부분 지주가 가져가는 상황에서 이들의 생계를 책임져 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고치였을 것이다. 타국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그들의 어머니이자 누이로 보였을 것이다.
3. 결론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일본의 근대 신감각파 문학의 대표작가로 칭한다. 허무적인 색채 속에 서정적 묘사가 가득한 1930년 ‘아사쿠사 홍단’ 등을 거쳐 미의식의 결정체라고 일컫는 ‘설국’을 13년에 걸쳐 연제 하며 발표하였다. 그러나 설국의 첫 부분이 1935년 1월 ‘저녁 풍경의 거울’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한 부분이 검열에 상처 입었었다. 그 이후 가와바타는 검열을 피해 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그것은 곧 어떠한 정치적 표현도,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 자연과 환경을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신감각파였을 것이다.
결국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시대와 배경에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렇기에 ‘설국’은 그 자체로 시대이고 배경인 것이다. 작가는 검열이라는 상황에 스스로 '자기 검열'을 선택했고, 전쟁과 제국주의에 빠진 일본의 한 국민으로서 조국의 청춘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고국의 그리움을 폭풍처럼 불러일으키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소설' 그리고 타국에서 허무함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을 위한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나라는 '설국'이라는 것을 알려 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설국은 1930~40년대 일본을 가장 잘 표현한 일본인에 의한 가장 일본다운 소설이며, 설국의 모든 것은 시대이자 배경이라 말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정향재 '설국과 그 시대 – 은폐된 배경으로서의 공간과 시대성' "외국문학연구 제53호" 413, 2014
정향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론' "일본 연구 제24호" 277. 2005.
정향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패전기 <손바닥 소설> 고찰' "비교 일본학 제35호" 159. 2015
정향재 '일본 현대문학자의 패전 의식' "세계문학 비교연구 제21집" 25. 2007.
김순희 '일본 전시( ) 여성들의 생활상' "한일군사문화연구 제18집" 217. 2014.
김시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연구'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