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는 '인류의 기원'

인류의 진화를 몇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진화에 대한 본질적인 저자의 의견을 매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인류의 기원'을 읽으며 저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다지역진화론이나, 책의 말미에 나온 '우월'과 '이익'이 진화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님 등은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며 세 가지 의문이 생겼다. 특히 '인류의 기원'을 읽기 한 달 여전에 접했던 '사피엔스'라는 책과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특이점이 온다'는 책의 내용들과 결합되면서 몇 가지 의문이 선명해졌다.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부분인 것 같지만, 나를 포함해서 왜 사람들은 인류의 기원 또는 진화에 깊은 관심을 가질까? 둘째, 인류의 기원을 밝혀내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마지막으로 인류의 진화도 특이점에 가까워졌나? 였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10만 년 전 대략 6종의 인간종 중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한 승자가 되었다. 그들은 사고와 언어라는 인지혁명과 인구증가 및 계급 등을 초래한 농업혁명, 그리고 엄청난 과학의 발전을 이뤘다. 더 나아가 신의 영역까지도 손을 대는 '호모 사피엔스'종은 한계를 넘어서려는 오만함으로 자멸을 초래하고 있다고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테츠카 오사무의 '붓다'나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에서처럼 인간이 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에 대한 각성으로 느껴졌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인류의 기원'에서의 진화에 대한 이해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문을 낳게 했고, 마지막 의문은 물리학에서 이야기되는 특이점 이론을 기술 진화론에 접목시킨 '특이점이 온다'는 책과 함께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에 기술적 특이점은 어떤 영향을 줄까? 그럼 특이점 그 이후에 인류는 어떻게 될까? 였다.
1.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기원'이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사물이 처음으로 생김, 또는 그런 근원이라고 했다. 한자로는 일어날 기(起), 근원 원(源, 原)을 사용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처음을 궁금해할까? 생물학적이거나 과학적인 호기심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라는 말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농담처럼 사용하지만, 이 말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이 담겨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인류 발전은 이러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할지도 모른다. 수학, 의학, 물리학, 심리학, 사회학, 종교 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는 현 인류의 발전을 통한 지금의 모습과 연결되고, 그 학문들의 출발은 바로 위의 질문에서부터라고 감히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지구상의 다른 생물과는 다른 존재로서의 가치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오듯이 학자들이 인류의 시작을 밝힘에 있어 다리가 먼저가 아니라, 머리가 먼저임을 밝히고 싶었던 것처럼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가 있는 사람'이 인류의 기원임을 입증함으로써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과는 존재적 차별성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인류는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그것의 출발도 특별했음을 입증하려는 오만함, 즉, 인류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인류의 발전을 이끈 동인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유발 하라리는 잘 찾아낸듯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가지는 근본적인 질문인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는 사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감으로써 행복함을 찾아 나서는 질문일 텐데 현재의 우리는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수렵채집 활동을 하던 유인원 시절이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처음,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서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류가 지구상의 한 생물의 종으로서 다른 다양한 종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2. 어머님이 누구시니?
몇 해 전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EBS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한 기억이 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의 이유로 해부학적인 구체적인 근거들과 함께 그들이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네안데르탈인도 언어가 있었으며, 그토록 혐오한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생물학적 DNA를 인류가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럼 이러한 오류는 왜 범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오류는 결국 인류의 기원을 밝혀내는데 시간적으로나 방법적으로 많은 장애물이 된다. 사실 이 오류 발생의 답은 책에서도 나온다. 이 문제 또한 인류의 오만함 즉, 차별함이 만들어낸 색안경이다. 네안데르탈인처럼 다소 거칠어 보이고, 무식해 보이는 외형을 가진 존재는 인류의 기원일 수 없다는 착각이 학문 발전의 장애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 원주민들의 모습이나 상황과 빗대어지면서 인류의 다양한 기원은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는 A 아니면 B라는 이분법적 선택도 오류를 가중시켰을지 모른다. 인류의 기원 이전에 지구 더 나아가 우주의 기원을 본다면 인류의 처음을 찾는 것은 매우 무의미한 일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거대함 속에서 인류의 처음이 하나이거나 '아프리카기원론'처럼 한 곳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이거나 편협한 사고가 오류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오래전 잠깐 인기를 모았던 '믿을 수 없는 생물진화론, 고래는 옛날에 하마였다'는 기타무라 유이치의 공통 조상을 공유한 근연관계(근연종) 사례를 보면서 느꼈던 놀라움이 문득 지금 다시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생물진화론 관련한 책이나 자료를 읽다 보면 (그 책들의 저자는 어떤 기원론을 가지고 있을지와는 무관하게)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을 제외한 다양한 생물에 대한 진화 연구는 놀라울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기원이 예측할 수 없었던 존재이거나 또는 다양함을 많은 일반인들이 알고 있듯이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진화에 관심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인지하고 있는 바는 인류에 비해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은 밝혀진 그 기원과 진화의 과정이 훨씬 더 상세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가능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특별함을 다른 생물에는 투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고래는 인간처럼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색안경을 끼지 않고, 그냥 보이는 데로 모아지는 데로 연구할 수 있고, 장애물 없이 상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인류의 기원은 발견하는 것보다 발견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어머님이 누구시니?라는 질문이 담고 있는 함축적 의미, 아마도 인류의 출생에는 어마어마한 선택적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꿈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3. 인류 진화의 특이점
인류는 직립보행, 커진 뇌, 언어구사 등 생물학적 진화와 더불어 사회문화적 진화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최근에는 기술에 의한 진화도 더하여져서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가 기술적 진화나 사회문화적 진화를 따라가는데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후생 유전학에서 획득형질유전설을 인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천 년 전 농업이 혁명 수준으로 발전하고, 지금 인류는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물학적인 상태는 아직도 굶주림을 전제로 몸으로 들어온 에너지를 저장하려 하고, 그 결과 절대 망하지 않을 산업을 꼽으라면 마케팅 전문가들은 망설임 없이 다이어트 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현실이 되었다. 바로 기술적 진화나 사회문화적 진화를 생물학적 진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대표라고 볼 수 있겠다. 미래학자들은 기술적 특이점이 온다고 예측한다. 이것은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을 예측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인류의 특별함이 인류가 만들어낸 기술로 인해 더 이상 특별함이 아닌 것이 되는 시점이 온다는 무서운 예측인 것이다. 이 책에서도 인류의 뇌가 작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앞으로 인류는 어떤 형태로든 진화를 계속할 것이다. 아니면 멸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화란 저자가 이야기했듯 '우월'과 '이익'을 절대 가치로 가지지 않는다. 단지 현재의 상황과 환경에 맞는 형질이 우월이 되는 것이기에 인류의 현재 모습이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이익되는 형질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진화와 사회문화 진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화에도 다양성과 총체성이 있듯 이 지구도 다양성과 그 구성 개체들 사이의 상호관계가 있다. 은하계에서 하나의 행성인 지구도 그 구성 개체들과 함께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고인류학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있게 되었는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류라는 특별한 생물로서의 조건값을 없애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가 지구라는 진화 대상이 가진 형질의 한 Unit으로 본다면, 획득 형질이 되던, 자연선택 형질이 되던 버려지지 않는 형질이 되기 위해서는 인류라는 하나의 종만을 보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